법정法頂(박재철)스님 소개
출생 ; 1932년 10월 8일 해인사대교과 1997년 대한불교조계종 길상사 스님 2004년 제2회 대원상 대상
법정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 수필가이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려왔다. 1954년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였다.
법정스님은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하셨다.
2010년 11일 오후 1시 50분쯤 세수 78세를 일기로 입적하셨다.
길상사는 산문집 '무소유' 로 잘 알려진 법정스님이 1997년 12월 창건해 2003년까지 회주를 맡아왔던 사찰로 법정스님은 이 곳에서 1년에 몇차례씩 대중법문을 하셨다.
길상사는 백석 시인의 연인 김영한(1916-1999)씨가 전재산을 시주해서 법정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천억이 넘는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 보다 못해'라는 가슴 절절한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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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충만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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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적은 사람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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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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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인연이길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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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 /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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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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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 법정스님
무료하고 심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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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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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같이 물같이 살자 / 법정스님
~~~~~~~~~~~~~~~~ 잠언집 /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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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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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집 / 살아있는 모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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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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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배우고 있다. 본마음이 아니다.
잠언집 빈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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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집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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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집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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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충만 中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 / 문학의 숲 20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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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스님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이다.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늘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판단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한 달 전이나 두 달 전 또는 며칠 전의 낡은 자로써
현재의 그 사람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늘 잘못된 것이기 일쑤이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딴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말로 비난하는 버릇을 버려야 우리 안에서 사랑의 능력이 자란다.
이 사랑의 능력을 통해 생명과 행복의 싹이 움트게 된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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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법정스님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이름 있는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아는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이라는 비료를 바다 건너 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나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개인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 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僧家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을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초를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盟邦)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事例)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 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無所有史)로 그 틀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物量)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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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우리 같은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다
낳아 길러준 은혜를 등지고 뛰쳐 나와
출세간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해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와 북쪽으로 떠났다
골목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중이 되러 절로 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보다도 비쩍 마른 할머니의 품속에서
혈연의 정을 익혔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입산 출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더욱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내가 해인사에서 지낼 때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외동 손자인 나를 한 번 보고
눈을 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란다
불전에 향을 살라 명복을 빌면서 나는 중이 된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린 시절을 구김살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 덕이었다
내게 문학적 소양이 있다면 할머니의 팔베개 위에서
소금장수를 비롯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덕일 것이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지만 실컷 듣고 나서도 하나 더 해달라고
조르면 밑천이 다 됐음인지
긴 이야기 해주랴 짧은 이야기 해주랴고 물었다
"긴 이야기"라고 하면 "긴긴 간지때"로 끝을 냈다
간지때란 바지랑대의 호남 사투리다
그러면 "짧은 이야기"하고 졸라대면
"짧은 짧은 담뱃대"로 막을 내렸다
독자인 나는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 어린시절
할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 나섰다
일제 말엽 담배가 아주 귀할 때 초등학생인 나는 혼자서
10리도 넘는 시골길을 걸어가 담배를 구해다 드린 일도 잇다
내가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를 따라 옷가게에
옷을 사러 갔는데
그 가게에서는 덤으로 경품을 뽑도록 했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뽑은 경품은 원고지 한 묶음이었다
운이 좋으면 사발 시계도 탈 수 있었는데
한 묶음의 종이를 들고 아쉬워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고지 칸을 메우는 일에
일찍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성은 김해 김씨이고 이름은 금옥 고향은 부산초량
부산에 처음 가서 초량을 지나갈 때 그곳이 아주 정답게 여겨졌다
지금 내 기억의 창고에 들어 있는 어머니에 대한 소재는
할머니에 비하면 너무 빈약하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우리 어머니는
내가 그리는 어머니의 상
즉 모성이 수호천사처럼 늘 나를 받쳐 주고 있다
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 백사람의 교사에 견줄 만하다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한 인간이 형성되기까지에는
그 그늘에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따라랴 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는 고사도 어머니의 슬기로움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절에 들어와 살면서 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갔다
내가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후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시었다
무슨 인연인지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우리 어머니를 더 따랐다
모교인 대학에 강연이 있어 내려간 김에 어머니를 찾았다
대학에 재직 중인 내 친구의 부인이
새로 이사간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불쑥 나타난 나를 보고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먹고 떠나오는데 골목 밖까지 따라 나오며
내 손에 꼬깃꼬깃 접어진 돈을 쥐어 주었다
제멋대로 큰 아들이지만 용돈을 주고 싶은 모정에서였으리라
나는 그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두번째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에 들러 만나뵈었다
그 때는 어머니는 많이 쇠약해 보였다
나를 보시더니 전에 없이 눈물을 지으셨다
이때가 이승에서 모자간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에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광주에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직접 불일암에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 드렸다
어머니는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하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 날로 산을 내려 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가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솔잎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두고 생각케 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순간
아,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꺽였구나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승가의 안거제도)를
철저히 지켰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 대신 장례에 참석 하도록 했다
49재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영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친 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모이는 집회가 있을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데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선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에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의 생명의 언덕이며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오두막 편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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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메아리 / 법정
봄의 꽃자리에 연두빛 신록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남도 (南道)의 절들에서는 차 따기가 한창이다.
옛 문헌에는 곡우 (穀雨)를 전후하여 따는 차가 가장 상품이라고 헸는데,
우리 조계산에서는 그 무렵이면 좀 빠르고 입하 (立夏) 무렵에 첫 차를 따는 것이 가장 알맞다.
이곳 선원에서도 엊그제 한 차례 따다가 볶았고,
오늘 대중들이 나가 또 한 차례 따 왔다.
예년 같으면 나도 아랫마을 사람들을 몇 데리고 따로 차를 땄을텐데,
올 봄에는 하는 일이 많아 짬이 없을 뿐더러
이제는 대중 속에 섞여 살게 되었으니 나누어 주는 한 몫으로 족할 수 밖에 없다.
차잎이 펼쳐지는 걸 보면 하루가 다르다.
그래서 바쁜 일에 좇기다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 적기 (適期)를 놓치고 딸 때가 더러 있다.
몇해 전 까지만 해도 우리 고유의 녹차 (綠茶) 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어
절에서도 극히 소수의 스님들만 즐겨마셨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차에 대한 인식이 새로와 안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특히 선원에서는 졸음을 쫓고 맑은 정신으로 정진하기 위해서라도 많이 마시고 있다.
물론 기호식품이란 굳이 약리적인 효과를 노리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차의 향기와 맛과 빛깔을 음미하고
그릇을 만지는 그 일 자체가 삶의 여백처럼 은은해서 즐거운 것이다.
요즘 우리 고유의 전통차에 대한 관심의 바람을 타고,
경향 각지에서 차의 붐이 일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일없는 사람들이 너무 극성을 떠는 바람에
담박하고 순수한 차맛에 어떤 흠이 가지 않을까 싶다.
차 좀 마시는데 뭐 그리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지,
차와 그릇은 진즉 구해 놓고도 마실 엄두를 못내고 있다는 말을 더러 듣는다.
누구나 마시다 보면 자기나름의 요령이 생기게 마련이다.
밥 먹는법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밥 먹을 줄 알고,
술 마시는 법에 대해서 강의같은 것 듣지 않더라도 술만 잘들 마시던데 뭐.
그러니 먼저 마셔보았다고 해서 제발 극성을 떨지 말아 달라는 소리다.
큰 길에는 문이 없듯이 다도 (茶道) 에도 또 한 문이 있을 수 없다.
배고픈 사람 법을 먹듯이, 차를 마시고 싶으면 조용히 마실 뿐이다.
차를 따거나 그걸 볶을 때면, 자칫 차도둑이 될 뻔했던 기억이 문득 되살아난다.
몇해 전 차 딸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해마다 송광사에서는,
한국 불교를 중흥시키고 이 도량을 새롭게 일으킨
보조국사 지눌 (知訥, 1158-1210) 스님의 추모재 (齋)를 지낸다.
스님의 재일인 음력 3월 26일 기해 사흘 동안 큰 법회가 열리기 때문에
전국에서 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모여든다. 따라서 산중은 전에 없이 붐비고,
이 절에서 사는 스님들은 일년 중에서도 가장 바쁘고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 북새통에 무엇을 가지러 불일암에 올라갔더니
굴뚝에서 때아닌 연기가 피어 올랐다.
웬일인가 싶어 부엌에 들어가 보았었다.
낯이 익은 노 (老) 여승이 할머니 한 분을 데리고 차를 따다가 볶고 있는 참이었다.
일손이 바빠 큰절이고 암자고 우리는 아직 차를 따지 않고 있는데,
아무 말도 없이 객 (客)이 와서 먼저 차를 따가는 걸 보니 속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개 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주책이 없는 사람을 보고 탓할 수도 없어,
다 볶으면 차 좀 주고 가라고 했더니 한마디로 못 주겠다고 거절이었다.
'남의 차밭에서 주인이 손도 안 댄 차를 따다가,
남의 솥에 나무까지 들여 볶으면서도 못 주겠다고 심히 괘씸한지고.
어디 못 주고 가는가 한번 보자.' 고 나는 속으로 별렀다.
차를 다 볶고 나자 그는 신문지에 싸서 가져 가려고 했다.
차의 섬세한 성품을 아는 처지에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사람보다도 차를 위해서였다.
차통을 몇개 꺼내 주면서 거기에 담아 가라고 했다.
마루에 볶은 차를 식히느라 널어 놓은 채 우물가로 손을 씻으러 간 것을 보고,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나는 서둘러 반통쯤 차를 담아 슬쩍했다.
그래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차를 마실 때마다 갈데없는 '차도둑'이 될 판 이었다.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이슬방울처럼 맺힌 다이아 목걸이도 아닌 맑은 차를 가지고 좀도둑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슬쩍 챙겼던 차를 슬쩍 비워버렸다.
개운한 마음이었다.
노 비구니는 우물에서 올라오자
무슨 생각에서였든지 차통을 하나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아까는 못 주겠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더니 차를 주겠다고 차통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내놓은 차통에 그는 하나 가득 담아 내몫으로 내놓고 큰절로 내려갔다.
나는 그때 이심전심 (以心傳心)의 오묘한 이치를 전존재로써 느낄 수가 있었다.
만약 반통쯤 담은 그 차를 슬쩍하고 말았더라면 그의 닫힌 마음을 끝내 열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비워버린 바람에 그의 마음이 열린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듯 메아리와 같은 것.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과 마음끼리는 서로 보내고 받아들여 메아리치는 것이다.
반쯤 담았던 것을 비우고 나니 가득 채워서 주는 이 응답.
두고두고 차도둑이 될 뻔하다가 한 생각 돌이키니 이처럼 떳떳하게 선물로써 받게 된 것이다.
어디 이런 차 뿐이겠는가.
세상 일이란 모두가 마음과 마음끼리 주고받는 메아리다.
미운 마음으로 보내면 미운 마음으로써 응답이 오고,
어진 마음으로 치면 어진 마음으로 울려온다.
마지 못해 건성으로 건네주면 또한 저쪽에서도 건성으로 되돌아온다.
크게 소리치면 크게 울려오고,
작게 소리치면 작게 울려 오는 것이 또한 메아리의 성질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은 지극히 작은 한 모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의 세계야말로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는 질서다.
눈은 가릴 수도 속일 수도 있다. 저마다 다른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그러나 마음은 절대로 가릴 수도 속일 수도 없다.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다.
그 스님이 주고 간 차를 마실 때마다 혀끝에 닿는 맛은 별로 없었지만,
마음의 실상을 음미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사람끼리 주고 받는 일의 뒤뜰을 넘어다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재윤이네와 옥이네한테 햇차가 나오면 보내주기로 했는데,
올해는 일이 바빠 하는 수 없이 말빚을 지게 되었다.
차를 만질 여가가 없어 거짓말장이가 되고 말았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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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雪害木) / 법정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老僧)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 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물을 떠다 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 들어주는 데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 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 버리고 안 계신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히 살아 있는 노사의 상(像)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 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이밧티이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殺人鬼) 앙굴리마알라를 귀의(歸依)시킨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神通力)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慈悲)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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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 법 정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간다.
가까운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독신 수행자는 주어진 여건 자체가 홀로이기를 원한다.
한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도 저마다 은자처럼 살아간다.
서로 의지해 살면서도 거기에 매이거나 얽혀들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독립과 자유를 원한다.
묶여 있지 않는 들짐승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숲 속을 다니듯,
독립과 자유를 찾아 혼자서 간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와 같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차피 저마다 자기식대로 사는 게 인생이다.
똑같이 살라는 법은 없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을 때 전체인 자기의 있음이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부분적인 자기이다.
우리는 시대의 영적인 스승 크리슈나무르티도 일찍이 말했다.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홀로일 때 비로소 세상에 살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을 때 완벽한 생동과 협동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전체적이기 때문이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지 혼자 지낸다고 해서 과연 ‘홀로 있음’인가.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가르침은 홀로 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킨다.
즉, 개체의 사회성을 말한다.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섬도 뿌리는 대지에 이어져 있듯.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
다코타 족 인디언 오히예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인디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배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는 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는 나날이 커져가는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다.”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거듭거듭 형성되어간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그 인생은 추해지게 마련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즐거움이 없으면 그곳에는 삶이 정착되지 않는다.
즐거움은 밖에서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을 거치면서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부분적인 자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자기일 때, 순간순간 생기와 탄력과 삶의 건강함이 배어나온다.
여기 비로소 홀로 사는 즐거움이 움튼다.
‘누가 홀로 가는가?’
‘태양, 태양이 홀로 간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베다 경전에 나오는 문답이다.
내가 소싯적부터 즐겨 외는 청마 선생의 <심산深山>이란 시가 있다.
심심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법정 스님의 산문집: 홀로사는 즐거움(샘터,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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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 맑은편지
- 법정 스님께
스님,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던 스님,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 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이 남기는것들 이었 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가톨릭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 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 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늘처럼 못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 두고 지냈지요.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서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물미역도 많이 드릴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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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모음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 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버리고 떠나기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오두막 편지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 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홀로 사는 즐거움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홀로 사는 즐거움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피네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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